posted by Ancco 2022. 12. 11. 02:32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시편 121장 1절)

부당한 인사이동을 당했을 때에도,
부당한 인사평가를 받았을 때에도,
내가 더 잘나지면 지금보다는 더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막상 그 때 내가 생각했던 지점에 와 보니,
인생은 또 다른 산을 마련해놓고 올라가라고 재촉하고 있다.

집주인과 한바탕 싸운지 거의 한달이 되어가려고 하는 시점에
돈을 돌려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4년이나 살았던 집이
사실은 어느 외국의 열차 대합실이었음을 깨달은지
몇 주가 지나고
드디어 이 곳에서 떠남을 허락 받은 것이다.

"집을 사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라는
어떤 작가의 미신 같은 말을 나는 신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거 불안이 해결되면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일들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으니 자연히 능률도 오르고,
개인적으로도 여유로워질 수 있다고.
아마 그는 지금 같은 거품장 이전에 집을 샀기 때문에 그런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게 아닐까.

난 큰 일을 앞두면 다른 작은 일을 웬만하면 미루곤 한다.
갑자기 생긴 일본 출장 때문에
집주인의 말도안되는 생떼를 포함한
개인적인 일들을 모두 뒤로 미루기로 결심하고,
'일본만 갔다오면 한번에 다 처리해버리자. 요즘 같은 시장에, 집 구하는게 뭐 별거라고'
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참 큰 착각이었나보다.

그러고보니, 난 전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그때도 많은 것을 미루기로 결심하고 이직 준비에 매진했다.
그 결과 원하는 대로 이직은 했지만,
아직도 그 때 미뤘던 일들은 미.결. 상태로 남아있다.

그 때 미룬 것 중 하나가 내집 마련이었다.
아직 전세금이 묶여있기도 하고,
내가 어디로 이직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을 섣불리 마련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직한 회사에서 좀 적응하면 적당한 출퇴근 거리에 집을 얻을 수 있겠지.'

지난 달 말, 몇 개월 동안 잠을 설치게 했던 출장 안건이 끝나고,
지난주와 이번주에 걸쳐 몰아치듯 이사 갈 집을
거의 열댓군데를 돌아보았지만,
뭐 하나 쉽게 해결 될 기미는 없고
올라 본 적 없는 산만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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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cco 2022. 7. 13. 14:18

난 아직도 일본에 가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외로움, 불안함에 잠식되는것 같기도 하다.
내 가족과 떨어져서 내가 무력해진다는 기분이
나를 좌불안석하게 만든다.

딱 두 번, 일본에 갔을 때 맘껏 즐기다 온 적이 있다.
두 번 모두 가족과 여행으로 갔을 때였다.

이번 출장 때도 전과 똑같은 불안을 느꼈다.

3년만의 해외 도항임에도 반가움, 설렘은 잠시 뿐이고,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야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같은 이유로 난 같은 한국이라도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살 엄두도 못낸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금방 도착 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
이런 강박을 갖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에게
내가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데에
무력감을 느낀다.

posted by Ancco 2022. 4. 25. 13:29

답답하다.
직장을 옮기고 부쩍 쓰고 말 하는 능력이 필요한 일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에서는 설명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일이 많았기에 지금 같은 곤혹스러움이 덜했다. 반면 지금은 직속 상사, 임원을 거쳐 최고경영자에게 까지 전달되는 서류와 보고가 많이 필요하다. 단 한번도 직접 대화 해 보지 못한 최고경영자를 이해 시켜야한다니. 매번 답답하다.
익명의 사람에게도 자기소개서와 경력기술서를 써서 보냈던 나였다. 난 어떻게 그런 글을 써서 마침내 설득시켰을까. 그 때의 나는 이직에 한 맺힌 귀신에 접신했던건지, 지금은 감도 안 잡힌다.
보고서 양식을 열 때 마다 무슨말인지 아리송해 하는 상사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데에 기대고 싶어서, 요즘은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를 읽고 있다.
하루종일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다가 집에 와서 또 말하기에 대해 읽으려면 신물이 날 수도 있지만, 김하나 작가 목소리와 말투를 떠올리며 읽으면 오히려 위로받는 면이 더 크다.
말도 글도 계속 하다보면 늘지는 않더라도 덤덤해지게지.

posted by Ancco 2022. 3. 13. 21:35

1.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
2. 얀 티에르상-영화 아멜리에 테마곡 (Comptine d'un autre été)
3. 드뷔시-달빛 (Clair de Lune)
4.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왕치아즈 주제곡 (Wong Chia Chi's Theme)
5. 카터버웰-영화 캐롤 오프닝곡 (Opening)

잠들기 전, 묵주기도, 책 읽을 때, 생각할 게 많을 때 돌아가면서 듣는 음악들이다.
1~3은 스스로를 차분하게 진정시켜야 할 때 들으면 도움이 되고, 4~5는 오히려 내 감정이 뭔지 쏟아내서 살펴보고 싶을 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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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cco 2021. 10. 17. 20:21

모더나 2차 접종까지 끝났다.
가장 큰 증상은 근골격과 임파선의 통증...😵
주사맞은 자리를 포함한 왼쪽 몸이 너무 아파서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주사 맞고 거의 24시간 만에 집 밖에 나왔는데
갑자기 겨울이 되어있다.

매년 이 시즌의 찬공기가 코에 들어오면
너무너무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
딱 이 날씨에 만나서 이젠 소식도 모르는 그 애...
백신 맞고 내리 앓다가 갑자기 찬공기에
그 애가 생각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왠지 내가 그 애 한테는 턱없이 모자란 거 같아서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내가 도망쳐버렸다.
그래서 너무 보고싶지만 더욱 용기가 나지 않는 인연...

딱 오늘같은 날씨의 가을날
그 때 좋은 이야기, 멋진 이야기 나누면서 모처럼
대화다운 대화도 많이 했었는데...
그 이후로 누구와도 그만큼 기억에 남는 대화를 해 본
기억이 없다.

밑도 끝도 없이 혼자서 추팔놀이 하게 되는 가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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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cco 2021. 8. 12. 18:07


생각 정리가 필요 할 때 성모당에 간다.
대구의 한가운데임에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한 곳.

항상 사람이 많은데도 조용해서 좋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고 싶지만
시끌벅적한 건 부담스러워 하는 편 (...)

구석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있으면
머릿속 디스크조각모음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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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cco 2021. 8. 8. 11:41


"집도, 가족도, 직업도 내가 알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과연 그는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요즘, 그 집의 2층 다락에 갇힌게 아닌가 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지금의 것들은 내가 선택한 것은 맞지만, 선택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만약'이라는 후회가 들 때가 많다.

posted by Ancco 2021. 8. 7. 21:18

최근들어 책 읽기가 부담스럽다.
선물로 문화상품권을 받았는데, 편의점과 교보문고 밖에 없어서 쓰기가 여간 난감한게 아니다. 이참에 장바구니에만 넣어 놓은 책을 주문해볼까, 하고 봤지만 내키지 않았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좀 눈에 띄는게 있을까 싶어 가봤지만, 더욱 물렸다.
베스트셀러, 추천책 서가에는 다 비슷한 책들 뿐이다.
한 때 수집하듯 읽었던 계몽주의적인 책도 이젠 제목만 봐도 울분만 느끼게 될 뿐이고, 좋아하는 작가의 낭만적인 소설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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