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Ancco 2012. 12. 25. 22:22

 

 

올해 읽는 첫 문학 작품

 

 

 

친구 생일 선물로 책을 고르다가, 나가사키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예스24 홈페이지 메인화면이었는지 정보메일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주력 광고중인 책이었다. 단지 그렇다고 해서 나가사키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라면이 영향을 미친 것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만도 아니었다. 내가 일본 여행 중에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이 나가사키였다. 12일 동안 머물며 항구 주변과 폭심지(爆心地)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나가사키라는 제목에 끌려다.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우라카미 성당이었다. 내가 들어섰을 때, 마침 장례미사 중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양장을 입은 유족들, 울려 퍼지는 성가. 일본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성당이 한 도시 안에 두 군데 있는 것부터가 나가사키만의 특징이다. 나가사키라는 명칭은 이 외에도 독자적인 특징들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소설 나가사키도 그럴것 같았다. 나가사키만이 갖고 있는 정서와 풍토가 소재이기 때문이다. 원폭으로 인생의 상처를 입은 여자와 현대인의 모든 특징을 갖고 있는 샐러리맨 남자. 여자가 남자의 집 벽장에 몰래 숨어들어 살다가 들키는 것이 발단이다. 이런 줄거리 소개가 매력적이었다. 프랑스인 기자 출신 작가가 얼마나 그 아픔을 잘 풀어 냈을까.

 

하지만 줄거리가 전부인 소설이었다... 한마디로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특히 실망스러웠던 점은 남자주인공이 전혀 일본의 50대 샐러리맨 같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유럽의 50대 남성 같았다. 일본의 50대 샐러리맨이 아니라 작가 자신을 투영 한 것 같았다. 이를테면 본문 속 이런 비유가 위화감을 들게 했다.

 

매미들은 심술궂은 하르피이아*처럼 끈질기게 이를 갈고 또 간다.”

아니면 전설 속의 엘프*가 당신 집을 주거지로 선택한 겁니까?”

 

이 외에도 중세 유럽 여성 차별을 상징하는 정조대*, 서양철학 용어인 실존*과 같은 표현들이 위화감에 기여했다. 나가사키를 헤르쿨라네움*에 비유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남자주인공이 편의점 도시락에 대해서 묘사하는 장면도, 강박증을 암시한다고 하기 보다는 오리엔탈리즘을 투영한 것 같았다. 애당초 프랑스 독자를 위해 쓴 소설이었기 때문일까? 무대만 나가사키일 뿐, 실제 사건만 가져왔을 뿐, 일본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가톨릭 신앙 풍토가 있고 일본 최초 서양 개항지 나가사키가 무대라는 점만이 미약하게나마 소설 속 설정에 대해 설득력을 실어 줄 뿐이었다.

 

여자주인공의 시점이나 과거 회상도 일본이나 나가사키라는 설정을 지워도 무방한 것들이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크다가 나중엔 공산당원이 된 파란만장한 여인. 전 세계 어디에 있을 법한 캐릭터일 , 원폭 피해자라든가 하는 설정은 오히려 맹장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소설 전반에서 이 배경이 나가사키로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건, 주인공 남자의 집 인근에 대한 묘사 뿐이다. 그런 묘사들로 미루어 보면 우라카미성당 인근의 단독 주택인 것 같기 때문이다.

 

번역에서의 문제도 두어 군데 있었다. 인명에 대해서도 Fumiko라는 이름을 푸미코라고 번역한 문제가 그렇다. 프랑스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번역자가 일본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튀긴 대하라는 표현은 그냥 새우튀김이라고 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첫 장()이 남자의 시점이었는데, 초장부터 실망감이 생겨버려서인지 끝까지 선입견을 둔 채 읽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구성 면이나 결말이나 전반적으로 기대 이하였던 건 사실이다. 이 소설을 통해 나가사키의 비극과 현대 일본 샐러리맨의 비애를 통찰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 같다.

 

별 두 개는 두 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주는 것이다.

 

 


나가사키

저자
에릭 파이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1-04-0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집주인 몰래 벽장에 숨어 산 일본 여성의 실화!2010년 아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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