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Ancco 2012. 11. 13. 22:36

 

 

 

일본추리소설

일본 소설 팬들 중에는 추리소설 팬들이 참 많다. 미야베미유키를 시작해서 히가시노게이고, 온다리쿠 등 국내에도 큰 팬덤이 있는 작가들 모두 추리소설 작가이다. 일본 추리소설만의 차별성 때문에 '일본추리소설팬'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추리소설 장르의 발전 단계는 '누가 범인인가'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했는가'를 거쳐 '왜 그랬는가'의 삼단계라고 한다. '왜 그랬는가'는 가장 고급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일본추리소설의 대부분은 '왜 그랬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왜'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치정 살인일 수도 있고 금전문제일수도 있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복수일수도 있다. 일본의 추리소설에서 주로 다뤄지는 '왜'는 특히 사회적문제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온다. 사실 사회적문제는 모든 '왜'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치정도 금전도 아버지도 모두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목적론적인 '왜'가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길래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가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 초 국내에서 영화로 개봉 된 '화차'의 원작 소설이 일본의 추리소설 '화차'이다. 영화의 감독인 변영주가 원작가인 미야베미유키의 엄청난 팬이다. 나도 TV에서 변영주감독이 '미미언니'에 대해서 찬양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변영주감독이 영화 각색을 맡았다고 했을 때 참 많이 걱정했지만 또 그만큼 신뢰했다. 변영주라면 화차를 소중히 다룰테니까.

화차는 90년대 초반 일본 여성이 카드빚 때문에 저지르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의 90년대는 '버블경제'라는 말로 대변된다. 소비지상주의경제였다. IMF직전의 우리나라의 모습이었다. 그로인해서 사람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소설에서 묘사되어 있다. 미유키는 여러 작품들 안에서 인명이나 지명이나 회사명을 돌려쓴다. 이런 걸 '발자크적'이라고 한다고 한다. 발자크가 처음 이런 수법을 썼다고 한다. 이름만 돌려 쓰는 게 아니라 소재도 항상 맞닿아 있다. 박완서의 소설 저변에 항상 6.25가 있는 것 처럼.

그런 미유키는 자신을 '마쓰모토세이초의 장녀'라고 자청한다. 당연히 친부녀지간은 아니다. 문학적으로 장녀라는 뜻이다. 미유키 소설의 원류는 세이초라는 뜻이다.

 

마쓰모토세이초

일본에서 사회파추리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 한 것이 마쓰모토세이초였다. 그는 일종의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저학력, 빈곤출신, 과년에 등단... 수많은 핸디캡을 딛고 장르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오히려 그것들 덕분에 더욱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존잘이었다. 사기캐였다.

진짜 사기꾼이라는 오해도 받아서 대필작가를 두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왜냐하면 그는 마흔에 등단해서 공개한 작품이 1000여편이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오해도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는 정말 그 모든 작품을 자신이 썼던 것이다. 그동안 참아왔던 욕구를 토해내듯이.

그는 초졸이었지만 학구열은 여느 교수 못지 않아서 다방면에 학문적으로 호기심이 끊임없었다고 한다. 특히 역사를 좋아해서 끈질기게 조사해고 연구했다고 한다. 깐깐한 학자들에게도 일부 연구 결과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끈질기게 조사하고 연구하는 습관은 작품에서 그대로 배어나온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만'이 아니라 '이런 정황상 이렇게 생각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증거를 잡고싶었던 것 같다.

고쿠라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고쿠라는 세이초의 연고지이다. 후쿠오카에서 한달간 연수 중이었을 때였는데, 원래 고쿠라에 여행 갈 계획도, 세이초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선배가 가자고 그래서 따라갔는데 그 때부터 세이초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 '오... 장난아니다...'라는 생각. 난 고쿠라의 세이초기념관에 갔었다.

기념관에는 여러가지 박물이 있고 그의 작업실을 통째로 옮긴 전시관도 있다. 어떤 표현을 빌자면 그 작업실은 '마치 세이초가 글 쓰다가 잠깐 화장실 간 것 같은' 상태였다. 정말 그대로 옮겨놓았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보존할만한 작가라는 반증이 아닐까?

 

사회파추리소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패전 직후의 시대였다. 우리 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었던 것이 통한스럽듯, 일본인에게도 미군정 치하에 있었다는 게 통한스러운 모양이다. 역지사지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그 시대에 연합군 아니 미군에 의해서 서민들이 유린당하는 현실은 유린당하던 조선사람들과 다름없었던 것 같다.

세이초는 전쟁을 일으킨 정치인과 재벌 뿐만 아니라 무지랭이 서민들까지도 고통받는 현실에 대해서 고발하고자 했다. 그는 끈질긴 호기심과 탐구력으로 자료를 모았고 그것을 토대로 픽션을 쓰기 시작했다.

난 사실 세이초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 것을 몇 편 봤는데, 최근에는 제로포커스를 보았다. 시대는 전쟁 직후이고 소재는 우리 표현으로는 '양공주'인 여자들이었다. 한 여자로써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잔혹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몸을 파는 여자라고 해서 비정상적으로 음탕하거나 부도덕한 사람들인 것도 아니다. 남들과 같은데 왜 '양공주'가 될 수 밖에 없었나, '양공주'의 몸을 산 '그들'은 어떤자들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말라'는 조로 범인들을 싸고도는 것도 아니다. 화차에서 그렇듯 세이초의 소설에서도 죄인들은 응보를 받는다. 다만 부조리한 사회만 남아서 반복된다.

 

GHQ

'일본의 검은 안개'를 읽다보면 점점 드는 생각이 있다. 갖다붙이기 아냐? 이거 순 음모론 밖에 안되는거 아냐? 정말 이런 의심이 들 만큼 GHQ가 연관되어있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패전국인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임시정부' 노릇을 했던 GHQ가 관련된 사건들은 여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정부 관련 사건들과 다름없다. 그러니까 정부가 일으키는 정치공작들을 일본에서 GHQ가 한 것이다. 냉전시대의 반공작전이 그 저변에 깔려있는 것도 관련이 있다.

제로포커스에서도 양공주들의 소비층이었던 미군들, 그래놓고 양공주들 단속한답시고 무차별 폭행단속을 하던 미군들. 세이초는 '패전국의 비애'가 아니라 '세상사의 부조리'를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극우주의자여서 '일본은 잘못한 게 없다. 다 오해다.'라고 하고자 하는 거였다면 작품에서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고 사회비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논픽션

세이초는 소재로 쓸 자료들을 모으다보니 픽션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다루고 싶어졌다고 한다. 더욱 리얼하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검은 안개'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 사회의 미스테리한 사건들에 대해서 방대한 자료를 통해 파헤쳤다. 온다리쿠의 '유지니아'의 소재가 된 '제국은행사건'이나 우리나라의 6.25에 대한 글도 있다. 그것들을 모아서 출판 한 것이 '일본의 검은 안개'이고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나왔다.

일본의 검은 안개에서 유독 많이 나오는 단어는 '모략'이다. 사전에서 모략이란 "1. 계략이나 책략 2.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함. 또는 그런 일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6.25에 대해서도 '그들의 이상한 모략전쟁'이라고 했다. 모략을 하려면 모략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이초는 거의 시종일관 모략꾼으로서 연합군사령부, GHQ(General Headquaters)를 지목한다. 다뤄진 사건들이 모두 미군정시대의 사건이라는 것도 그런 연관이 있다.

그런데 그가 끈질긴 관찰자였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정확한 관찰자는 아니었다. 그가 추리한 사건의 전말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된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세이초의 논픽션 뿐만 아니라 모든 논픽션을 읽을 때에는 그것을 맹신해버리면 곤란하다. 맹신은 글을 쓴 작가도 바라지 않는 일일 것이다.

사건의 제 3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모든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전문 수사관들도 해결이 불가능한 사건들도 많다. 작가라고 해도 일반 시민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사건의 전모를 모두 들춰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논픽션을 읽을 때 작가가 유지하고있는 '의심하는 태도'를 독자도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검은 안개(상)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출판사
모비딕 | 2012-05-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일본 사회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들!이 책은 마쓰모토 세이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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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검은 안개(하)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출판사
모비딕 | 2012-05-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일본 사회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들!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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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커스 (2010)

Zero Focus 
7
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히로스에 료코, 나카타니 미키, 키무라 타에, 니시지마 히데토시, 카가 타케시
정보
미스터리, 드라마 | 일본 | 130 분 | 201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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