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Ancco 2023. 12. 13. 21:14


요며칠전엔 짬을내서 미뤘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했다.

후련함을 느낄 찰나게 급격하게 허기가 느껴져서
좋아하는 오일파스타 가게로 급하게 갔다.

혼자만의 성찬.

올해도 시작할 때는 원대한 꿈과 계획이 있었지만
늘 그렇듯 대충 그 계획 같아 보이는 것을 수습하며
대림을 지내고 있다.

그래도 올해는 이전엔 몰랐던
성취와 보람은 많이 느꼈다.

한계도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돌아보니 한 고비 넘겼음을 알게되었네.

해가 지나가기 전엔
작년엔 겸연쩍어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봐야겠다.
사실, 그들이 먼저 내 내향성을 고려해서 먼저 연락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

새로운 해에는 정말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 같다.
이전엔 살아본 적 없는 삶, 해본적 없는 과제들.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고 또 똑같은 소회와 함께
대림을 맞이하겠지.

난 늘 그 비슷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돌아보면 35년간 내 인생은 결과적으론
퍽 괜찮게 마무리 되며 흘러왔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또 감사한다.

posted by Ancco 2023. 4. 20. 23:48


“사랑의 기적(1991)”은 뇌염으로 인해 평생 뇌성마비를 앓아온 레너드(로버트 드 니로)와 그가 입원해있는 요양병원 의사 닥터세이어(로빈 윌리엄스)가 주연 한 영화다.

영화는 수십년 간 뇌성마비를 앓고 있던 레너드가 ‘엘도파’라는 신약 덕에 다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아빠도 원인 모를 뇌질환으로 레너드와 같이 몇 년간 마비상태로 누워있다가 돌아가셨다.

내가 아빠라는 한 사람의 인격을 다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마비 증상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완전히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난 아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만약 엘도파 같은 약이 있었다면, 영화에서 처럼 짧게나마라도 아빠가 그동안 그 몸 안에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들을 수 있었을까.
아빠의 병문안을 가면, 아빠는 떼꾼한 눈으로 우릴 뚫어져라 보곤 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어서 갑갑함과 외로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다시 만나면 이야기 해드리고 싶다. 그 때 더 자주 만나러 못 와서 미안했다고.



영화 속 주인공인 닥터세이어는 ’올리버 색스‘라는 신경학 전문의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저런 사람이 실존인물이라니.

호기심이 동해서 그가 쓴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최근, 그 중 하나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있는데 알콜성 치매를 앓고 있던 지미의 사연에서 또 내가 사랑한 가족 한명이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시장에 나물을 팔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로 뇌의 일부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 후 평생 극심한 두통과 신경통으로 고통스러워 하셨지만, 타고난 영민함과 기민함은 잃지 않으셨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할머니도 결국 뇌의 일부가 없는 사람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에서 들어왔나?”

내가 유학 후 귀국한지 한참 지나고도 몇번이나 엄마에게 물어보셨다고 한다. 치매가 시작 된 것이다.

그 후 할머니의 치매 증세는 급격하게 심해졌다.

이전의 할머니는 대체로 꼿꼿한 모습이었는데, 증세가 발현 된 이후로는 자주 실없이 웃기도 하셨고 자주 통곡을 하기도 하셨다. 그동안은 그 모든 감정을 참아왔지만, 이젠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사람 처럼.

한번은 젊어서 돌아가신 증조 할아버지 사진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며, 그 분이 어떻게 두 아들과 한날한시에 돌아가셨는지 한참을 이야기 하셨다.
아마도 곱씹으면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동안 하지 않으셨던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그 날 처음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또 한번은 집을 나가서 길을 헤메기도 하셨다.
삼촌은 고육지책으로 할머니의 손목에 가족의 전화번호를 문신으로 새겼는데, 할머니는 그 문신을 언제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생업이 바빴던 우리 가족들은 긴 회의 끝에, 모두의 집과 가까운 시내 요양병원에 할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가족 모두 틈만 나면 병원을 방문했고, 나도 다니던 학교와도 가까워서 종종 하교길에 들러 할머니를 보고 집으로 갔다.

할머니는 과장을 좀 보태자면 그 동네 일대에서 가장 신앙심 깊은 천주교 신자였다.

그 요양병원도 천주교에서 운영하던 곳이라, 때마다 병원 스피커에서 삼종기도를 틀어주었다.
할머니는 그 때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길을 가다가도 삼종기도 때가 되면 잠깐 멈춰서 기도 하던 할머니였다.
그랬던 할머니를 병원에 두고 나오다가 뭔지 모를 서글픔에 복받쳐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 온 적도 많았다.



책에서 소개 된 지미도 성당에서 만큼은 기억을 잃기 전의 모습이었다는 대목이 있다.
거기서 또 할머니가 떠올라 눈물이 차올랐다.

한 사람을 규정하는 본질은 뇌에 있는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posted by Ancco 2023. 4. 7. 12:30

매사에 동의를 얻어가며 살아가기는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끊임없이 동의와 양해와 이해를 구하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속에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는 너무나 어렵다.

이렇게 사는 나에겐 정말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애초에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출산에 대한 문제이다.

이미 출산 경험이 있는 친구, 선배, 어른 때로는 종교인들에게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태어날 아이로부터의 “동의” 없이 출산을 하는
점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은 없는듯 하다.
이런 고민하는 나를 걱정이 과하다거나 혹은 특이한 사람 쯤으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난 오히려 어떻게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런 것 까지 다 생각하다가 애 못낳으면 어쩌려고”라며 걱정하는 어른도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부터 명명할 수 없는 불편감으로만 느끼고 있던 생각을 “개념화“ 해 준 영화가 있다.
가버나움이다. 나를 낳고도 고통에 방치시킨 부모를 고소하겠다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버나움은 2019년에 개봉했는데, 그 해는 내가 결혼한 해이다.

영화를 다 보지는 못했다. 너무 고통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엔, 어쩌면 출산과 양육은 동의가 아니라 영원히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뭐가 되었든, 그게 동의이든 양해이든, 그것은 출산자의 책임임은 차이가 없지만.

posted by Ancco 2023. 3. 19. 21:09

그 때 선택하지 못한 것들을 돌아보곤 한다.
언제로 돌아가면 모든 걸 완벽하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아빠가 병명을 진단 받기 전, 돌아가시기 전,
대학 입시 전, 유학 전, 취업 전, 동생의 결혼 전
아니, 아예 아주 멀리 돌아가서
초등학교 입학 전은 어떨까
중학교 1학년 때라면, 아니 적어도 고1 때라면...

가장 완벽한 나를 만들 수 있을 만한
과거의 시점을 계산해본다.
이런 망상을 취미처럼 하는 사람에겐,
“재벌집 막내 아들”은 하나의 위로 같기도 했다.
‘나만 이런 망상을 하는 건 아니네’

그런데 늘 내가 가장 좋은 과거의 ‘타이밍’이 언제인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영화를 봤다.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이다.

‘멀티버스’가 주제라길래, 양자경도 나오겠다
마블무비 샹치의 스핀오프인가 했던 이 영화는
마블무.비.와는 아무 상관 없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시.네.마. 오롯이 그것이었다.

저 먼 어느 지구에서의 나는 모든 경우의 수 중
가장 잘 된 모습으로 살고 있고,
우연히 그 삶에 접속해서
그 삶에 얹혀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도
그걸 기꺼이 거절한다는 것.

그걸 거절하고 지금 이 가장 실패 한 삶을 선택하는 이유.

그 어떤 과거의 시점을 따져봐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서 완벽히 행복할 수 있을
계수는 찾을 수 없었다.

지금 내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만 있으니까.

내가 눈알만 뻐끔한 돌멩이일지라도
너랑 함께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굴러떨어질래.
그 무엇도 아닌, 그 어디도 아닌 바로
이 모습으로 여기에서.


posted by Ancco 2023. 1. 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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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cco 2022. 12. 11. 02:32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시편 121장 1절)

부당한 인사이동을 당했을 때에도,
부당한 인사평가를 받았을 때에도,
내가 더 잘나지면 지금보다는 더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막상 그 때 내가 생각했던 지점에 와 보니,
인생은 또 다른 산을 마련해놓고 올라가라고 재촉하고 있다.

집주인과 한바탕 싸운지 거의 한달이 되어가려고 하는 시점에
돈을 돌려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4년이나 살았던 집이
사실은 어느 외국의 열차 대합실이었음을 깨달은지
몇 주가 지나고
드디어 이 곳에서 떠남을 허락 받은 것이다.

"집을 사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라는
어떤 작가의 미신 같은 말을 나는 신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거 불안이 해결되면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일들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으니 자연히 능률도 오르고,
개인적으로도 여유로워질 수 있다고.
아마 그는 지금 같은 거품장 이전에 집을 샀기 때문에 그런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게 아닐까.

난 큰 일을 앞두면 다른 작은 일을 웬만하면 미루곤 한다.
갑자기 생긴 일본 출장 때문에
집주인의 말도안되는 생떼를 포함한
개인적인 일들을 모두 뒤로 미루기로 결심하고,
'일본만 갔다오면 한번에 다 처리해버리자. 요즘 같은 시장에, 집 구하는게 뭐 별거라고'
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참 큰 착각이었나보다.

그러고보니, 난 전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그때도 많은 것을 미루기로 결심하고 이직 준비에 매진했다.
그 결과 원하는 대로 이직은 했지만,
아직도 그 때 미뤘던 일들은 미.결. 상태로 남아있다.

그 때 미룬 것 중 하나가 내집 마련이었다.
아직 전세금이 묶여있기도 하고,
내가 어디로 이직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을 섣불리 마련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직한 회사에서 좀 적응하면 적당한 출퇴근 거리에 집을 얻을 수 있겠지.'

지난 달 말, 몇 개월 동안 잠을 설치게 했던 출장 안건이 끝나고,
지난주와 이번주에 걸쳐 몰아치듯 이사 갈 집을
거의 열댓군데를 돌아보았지만,
뭐 하나 쉽게 해결 될 기미는 없고
올라 본 적 없는 산만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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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cco 2022. 7. 13. 14:18

난 아직도 일본에 가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외로움, 불안함에 잠식되는것 같기도 하다.
내 가족과 떨어져서 내가 무력해진다는 기분이
나를 좌불안석하게 만든다.

딱 두 번, 일본에 갔을 때 맘껏 즐기다 온 적이 있다.
두 번 모두 가족과 여행으로 갔을 때였다.

이번 출장 때도 전과 똑같은 불안을 느꼈다.

3년만의 해외 도항임에도 반가움, 설렘은 잠시 뿐이고,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야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같은 이유로 난 같은 한국이라도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살 엄두도 못낸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금방 도착 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
이런 강박을 갖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에게
내가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데에
무력감을 느낀다.

posted by Ancco 2022. 4. 25. 13:29

답답하다.
직장을 옮기고 부쩍 쓰고 말 하는 능력이 필요한 일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에서는 설명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일이 많았기에 지금 같은 곤혹스러움이 덜했다. 반면 지금은 직속 상사, 임원을 거쳐 최고경영자에게 까지 전달되는 서류와 보고가 많이 필요하다. 단 한번도 직접 대화 해 보지 못한 최고경영자를 이해 시켜야한다니. 매번 답답하다.
익명의 사람에게도 자기소개서와 경력기술서를 써서 보냈던 나였다. 난 어떻게 그런 글을 써서 마침내 설득시켰을까. 그 때의 나는 이직에 한 맺힌 귀신에 접신했던건지, 지금은 감도 안 잡힌다.
보고서 양식을 열 때 마다 무슨말인지 아리송해 하는 상사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데에 기대고 싶어서, 요즘은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를 읽고 있다.
하루종일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다가 집에 와서 또 말하기에 대해 읽으려면 신물이 날 수도 있지만, 김하나 작가 목소리와 말투를 떠올리며 읽으면 오히려 위로받는 면이 더 크다.
말도 글도 계속 하다보면 늘지는 않더라도 덤덤해지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