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Ancco 2012. 12. 23. 16:46

2012년을 시작하면서 마무리 한 책.

 

올해는 내 대학생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책을 읽었던 한 해이다. 작년에 책 안 읽는다고 담당교수님께 몇 번이나 면박을 받고 부끄러워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릴 때에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들 사귀기 어려운 새 학년 새 학기 때 책을 많이 읽었지만, 성격이 점점 외향적으로 바뀌면서 독서 보다는 나가 노는 걸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대학 들어와서도 내 독서는 우리학교 특유의 과제인 북리뷰로 읽는 책이 거의 전부였다. 그 마저 없었으면 난 양철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담당교수님의 수차례에 걸친 면박 덕분에 다시 책을 적극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를 시작하면서 읽게 된 책이 개념어사전이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책을 등한시 하다가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으려니 좀이 쑤셔서 정독을 할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대출기한이 끝나면 재 대출하기를 반복하면서 두 달 정도를 끌었는데도 반도 읽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 다음으로 읽은 책은 강상중의 청춘을 읽는다였다. 재일교포인 그가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과 그 시절의 기억을 연관 지어 쓴 독후감이었다. 식민지 출신 교포가 겪는 방황이 흥미로웠던 덕분에 개념어사전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차례차례 다음 책들을 읽다가, 2학기 중반이 되었다. 그 때 읽고 있던 책은 미셸푸코였는데 문고판 책이었는데도 철학 용어가 너무 생소해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하루는 과제 때문에 도서관에 앉아있는데 서가에 꽂혀있는 개념어사전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미셸푸코에 손을 댄 이유는 개념어사전때문이었다. 하도 미셸푸코를 자주 언급하기에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책을 읽으려면 비교적 쉬운 입문서를 먼저 읽어야 하는 법. 다시 개념어사전을 빌렸다. 그게 11월이었으니 한 달 반 만에 결국 다 읽었다.

 

저자 남경태는 MBC라디오에서 일요일 아침에 타박타박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것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벌써 5년째 방송되고 있다. 한 번은 화장실의 역사를 다루기도 하고 한 번은 도서관의 역사를 다루기도 했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도 총서 쪽에 꽂혀있는데 으로 시작하다보니 그 중에서도 거의 맨 앞줄에 꽂혀있다. 제목이 나한테는 특이하게 느껴져서 꺼내 들어보니 저자가 남경태였다. 거의 매일 팟캐스트로 즐겨듣는 라디오의 진행자 그 남경태? 그 남경태였다.

저자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학력에서부터 지식인이라는 보증서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스스로를 야구에서의 포수에 비유하곤 한다. 다양한 구질(球質)의 역사를 다루겠다는 뜻이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어떤 것의 역사든 그가 전혀 모르는 분야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또 다작의 저술가이기도 하다. 거의 매년 책을 한 권씩 쓴다고 한다.

 

 

 

책 제목이 사전이긴 한데 보통의 사전과는 다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면죄를 받기위해 이렇게 써 놨다.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 사전.’이 이 책의 원제목이다. 사전을 쓰는 일은 저술이 아니라 편찬이다.” 그의 말 대로 보통의 사전은 개인이 쉽게 정의를 내려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 역사, 과학 등 제분야의 개념어에 대해 입문적인 설명을 자신만의 언어로 쓰고 있다. 개념어들에 대한 설명이긴 하지만 입문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책을 쓰려면 얼마나 방대한 지식이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할까? 남경태는 같은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성경섭이 만난 사람이라는 프로에 출연해서, “다독도 좋지만 하나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다독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처음 읽을 때와 나중에 읽을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근데 내 생각엔 아무리 그래도 그도 다독가일 것 같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책을 여러 번 읽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사고방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한 해 동안 많은 일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일들에 대한 내 시각에 영향을 미친 건 개념어사전과 성경이었지 않나 싶다. 아니, ‘개념어사전이 아니라 남경태가 영향을 미친 거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어떤 부분이 그렇게 영향을 미쳤냐고 물으면 딱히 기억은 안 나지만, 더듬어보면 타박타박 세계사개념어사전에서의 어조와 비슷한 것들이 떠오르곤 한다. 책 목차를 펼쳤을 때 딱 눈에 들어오는 파시즘이라는 개념어만 해도, 무의식적으로 생각에 영향을 받곤 한다. 그 해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대동단결은 좋은 말이지만 같은 뜻의 파쇼는 나쁜 말이다.”

파쇼라는 말이 내겐 남다르게 다가왔었는데, 연초에 읽었던 청춘을 읽는다에서 강상중의 회상에서도 파쇼라는 말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그가 일본 큐슈의 지방에서 태어나서 처음 한국으로 온 건 청년 무렵이었는데, 선친의 고향을 방문한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 때 마을 평상에 앉아 있는데 한 노인이 강상중이 일본에서 온 것을 알고 나직히 이 나라는 파쇼야.”라고 일본어로 속삭였다고 한다. 그 때 그가 받은 충격이란. 그 시대는 군사정권 시대였다.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 요즘, 그가 박정희의 딸인데다가 보수당 출신인 탓에 논란이 많다. 과반수에 의해서 선출되었지만 상대 후보와의 득표수 차이가 그렇게 크지도 않다. 나도 걱정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낙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예전과 다르게 자유롭게 책도 읽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본 꼭지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금서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연행되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파쇼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파쇼라는 단어는 좌익/우익이라는 개념어와 연결 지어서 생각하면 또 좋다. ‘좌익/우익이라는 표현의 유래부터 그에 얽힌 프랑스혁명-최근 개봉, 상연 중인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과 우리 사회 이야기 까지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법이다.”

지당한 말씀. 날개가 어느 한 쪽이 너무 작다든지 하는 그런 새는 불구이다. 이번 대선에서 득표수가 거의 피장파장인 것은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개념어 사전

저자
남경태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2-02-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남경태만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다시 쓴 개념어 사전!지식의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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