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의식이다. 제사의 주인공은 아무 말이 없는데도 남은 가족들이 망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떠난 이를 기리는 의식을 치른다. 그렇게 모인 가족들은 저마다 이 의식 대해 갖고 있는 의견들이 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떠나 보낸지 몇 년이 지나도 감정에 복받쳐 울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게 다 무슨 의미이냐는 듯 냉소하기도 한다. 아마 대부분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2008년 작품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장남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모습을 통해 이런 풍경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이 집안의 어머니 도시코와 딸 지나미의 대화 소리와 함께 그들이 채소를 손질하는 손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능숙하게 당근 껍질을 벗겨내는 어머니와 달리 딸의 손은 마지못해 하는 듯 느릿느릿 하기만 하다. 첫 장면 부터 어머니와 딸이 살짝 어긋나 있음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것이다. 둘은 같은 요리를 하며 무척 가까운 모녀 간의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살짝 들춰보면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이 가족의 대화나 상황들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영화의 발단이 되는 기일의 주인공은 이 집안의 장남으로, 10년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날은 딸 지나미네가 올 뿐만 아니라 아들 료타네는 모처럼 하룻밤 자고 가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료타는 본가에 내려가는 것을 불편해 하고 있다는 것을 첫 등장에서 부터 알 수 있다. 부모님께는 이미 자고 간다고 이야기 해버렸지만, 거짓말을 해서라도 빨리 본가에서 빠져나오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료타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을 뿐더러, 본인의 직장도 불안정한 상태라 부모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껄끄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스스로를 집에서 겉도는 존재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료타는 태어날 때는 둘째였지만 형이 사고로 죽게되면서 첫째가 되어버렸다. 가족들 모두 그에게 '이젠 네가 장남'이라고 하지만, 그는 죽은 장남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님 앞에서 구태여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장남의 역할을 맡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한테 장남 노릇을 시킬 거면 나랑 형을 헷갈리지나 말든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부모님이 어릴 적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형을 헷갈리자, 카메라에 비춰지는 료타의 표정에서 그의 기분을 읽을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료타의 모습으로 짐작해보건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형과 비교 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어느 순간엔 형을 따라잡는다거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멈췄던 것 같다. 어떻게 해도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진심으로 료타를 못마땅해 한다거나 싫어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것은, 앞서 나오는 장면에서 아버지가 아츠시와 단 둘이 있을 때 나누는 대화에서 알 수 있다. 아츠시를 대하는 아버지의 눈빛이나 어조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얄궂게도 몇 십년을 함께한 가족들 앞에서는 퉁명스러운 태도 때문에, 가족들이 아버지의 진심을 헤아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결국 료타가 자신이 원가정 내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하는 이유는 부모님의 태도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의 겉보기에 무뚝뚝한 태도 뿐 아니라, 따뜻한 것 같지만 이면엔 냉기가 있는 어머니의 모습도 그렇다. 영화 속에서 가족이란 존재의 차가운 이면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어머니를 그려내는 장면은 정말 절창이다. 가령, 늦은 저녁 조용한 시간에 어머니와 료타가 나누는 대화가 그렇다. 장남의 기일이라고 하루 종일 식구들과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한 어머니가 사실 어떤 마음으로 기일을 보냈던 건지 알게 되었을 때, 더더욱 헷갈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료타가 부모님의 의중에 대해 갈피를 못 잡는 반면, 딸 지나미는 비교적 부모님 의중을 파악하고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료타는 오랜만에 집에 왔기에 이제야 욕실 타일이 깨진 채로 방치되어 있거나 노인용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지만, 지나미는 자주 부모님 집을 드나들면서 일찌감치 부모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같이 살자고 하지만, 부모님은 지나미의 마음은 모른 채 아직까지도 죽은 장남의 물건들을 껴안고 지내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넉살 좋은 사위의 노력도 장남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님에게 가 닿기엔 역부족인 듯 하다. 지나미는 료타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족 내에서 자리를 못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료타의 처인 유카리 또한 이 집안에서 굉장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료타와 결혼하여 이 집에 시집온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자신과 아츠시를 다른 남 취급하는 어머니의 태도에 점점 지쳐가는 중이다. 어머니가 고이 보관해둔 기모노를 물려주는 것이 얼마나 귀한 마음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료타와의 아이는 갖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에 크게 상처를 받고 만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 하고자 노력하지만, 유카리 입장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고된 감정 노동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부모의 뒤를 따라 걸으며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몇몇 암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우연히 거실로 들어온 노란 나비에 홀려 죽은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유카리와 아츠시의 모습이나, 이웃집 할머니가 구급차에 실려가는데도 의사이면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늙은 아버지를 목격하는 료타의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감독은 자식들은 사실 저절로 부모를 닮고 싶어하고 곁을 원한다는 것을 아츠시를 통해서 그리고자 하는 것 같다. 아츠시는 일찍 친아버지를 여읜 조숙한 아이다. 아츠시 또한 이 집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인물로, 의붓 사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지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중이다.
아츠시는 료타가 어린시절 어떤 아이였을지 암시하는 캐릭터인데, 극 초반에 “아무도 안 듣는데” 왜 죽은 생명에게 편지를 부쳐야 하는지 되묻는 장면에서 기일을 챙기는 것에 회의적인 료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또 의붓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하루를 보낸 후, 밤하늘을 보며 혼자서 기도인지 다짐인지 모를 독백을 하는 모습에서 료타가 한때 아버지 처럼 의사가 되고 싶어했던 심리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이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저릿한 이유는, 처음엔 죽은 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비웃었던 아이가 스스로 밤하늘에 대고 기도 같은 독백을 하는 모습을 통해 기일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가족 사이에 자신의 자리가 없는 것 같아 상처를 받으면서도 가족과 함께 하고 싶어하고, 먼저 떠난 가족의 빈 자리를 보는 것이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기일을 챙기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는 이런 면에서 료타를 비롯한 자식들이 집안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앞으로 아츠시가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계속 한발 늦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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